[ 3 ] 그 뒤로 약 두 시간 반. 드디어 메일이 왔다. 두 시간 반이나 기다릴 줄 알았으면 얼른 밥이라도 먹어 뒀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했다. 물론 두 시간 반 전에는 그런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못했고, 카페에서 치즈 케이크나……, 생각했었지만. 지금 있는 곳을 알리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기다려 달라고 연락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사로 돌아가려는데 퇴근하던 직원과 마주치고 말았다. “어? 나카하라 씨, 무슨 일이야?” 예상대로 말을 걸었다. “두고 간 게 있어서요.” “저런, 어쩌다가. 그럼 수고해, 먼저 갈게.” “네, 수고하셨어요.” 그런 대화를 인사와 거짓말로 대충 넘기고 최상층으로 향했다. 비서실은 역시나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그곳을 무시하고 사장실로 향했다. 중후한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하려고 했다. ……긴장됐다. 확실히 나는 중역 전용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는 접수 직원이었지만, 실제로 중역들과 직접 연락을 하거나 집무실에 드나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비서들의 일이니까. 주먹을 쥐고 들어 올린 손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하지만 이런 데서 굳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뒤 노크를 했다. “나카하라입니다.” “들어와.” ……들어오라고 해도 말이지……. 역시나 몸이 경직되어서 좀처럼 문손잡이를 돌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불려온 이상 들어갈 수밖에! “실례하겠습니다.” 용기를 내서 문을 열었다. 안에 펼쳐진 사장실. 평소에는 비서실의 미인들이 임원실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관리했기 때문에 단순한 접수 담당 파견 사원인 나 같은 게 접근할 일은 없었다. 왜 접수만 파견 사원인 것일까……. 계속 앉아만 있는 사람을 정사원으로 채용하면 비용 면에서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친해진 사원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정말일까 싶기는 했지만, 다른 사원과 함께 갔던 술자리에서 취한 참석자 중 한 명이 비서는 어학 실력이 뛰어나거나 비서 검정 자격을 갖고 있는 등, 채용 기준이 있지만 접수는 얼굴로 뽑는 것이라고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원을 ‘얼굴’로 채용할 수는 없으니까, 파견 사원들에게 맡기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칭찬인가 싶어 잠시 기뻐했지만, 아무튼 외모뿐이라는 의미를 속으로 깨닫고 침울해졌다. 내 입으로 말했다가는 온 세상에서 화살이 날아올지도 모르지만, 우리 엄마는 현의 미인 대회에 뽑힌 적이 있는 사람이라 나도 여동생도 일단 외모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글쎄. 어렸을 때는 프로덕션에 들어가 키즈 모델로도 활동했으니까 못생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에 이미 마음이 동물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기 때문에 연예인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부모님에게도 ‘받은 돈은 어른이 되어서 가게를 열 때 쓸 거니까 잘 보관해둬’ 라고 희망이 없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뭐, 아무튼 그런 것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방 안에 있는 커다란 책상 앞에 아이스 프린스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어, 나카하라 리카입니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펫으로서? 내가 말하고도 태클을 걸고 싶어졌다. 인터넷에서 아무리 조사해 봐도 역시나 ‘펫 계약’에 관해 납득할 만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게임이라든가. 아, 아니, 잠깐만. 게임이라니, 어른이 즐기는 게임이라면 저질인 것도 있을 수 있잖아? 그렇다는 말은, 역시 ‘펫 계약’이란 저질……. “왜 그러지? 그렇게 재미있는 얼굴을 하고.” 생각도 못 한 질문이 날아들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렇다고 잠자코 가만히 서 있기만 할 수도 없었다. “……재미있는 얼굴이요? 제가 재미있는 얼굴을 하고 있나요?” “그래.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져 있어.” “그런……가요?” “참고로 말하겠는데, 눈을 깜박이지 않으면 눈에 좋지 않아. 보고 있는 이쪽까지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말한들……. “조금 의외로군. 접수처에 파견된 여직원은 미인이지만, 농담도 전혀 통하지 않고 누구에게든 굽히지도 않는 난공불락의 목석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줄은 몰랐어.” 뭐? 지금 그 말엔 체크하고 싶은 항목이 몇 가지 들어 있었다. 누가 미인이라고? 농담이 통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목석? 재미있는 퍼포먼스? 이 사람, 전직 회계사에 아이스 프린스로 불리며 차가운 인상을 주위에 흩뿌리고 있지만, 사실은 의외로 순진한 것 아냐?! “저는 제 외모에 대해, 자화자찬일지도 모르지만 중상쯤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농담을 좋아해서 개그 프로그램도 자주 보고, 남자 친구 모집 중이라 난공불락도 아닐뿐더러,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건 전혀 아닌데요.” “뭐?” 뭐? 라니, 뭐야. “그래?” “왜 그렇게 놀라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렇습니다.” “남자 친구 모집 중?” “네. 제 꿈에 협력해준다는 게 최대 요구 조건이지만요.” “꿈……. 가게를 낸다는 것?” “네. 여동생과 함께 애완동물 잡화점을 여는 게 꿈이에요.” “……….” 어쩐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저어.” “아니, 됐어. 지금은 어떻게도 안 될 테니까.” “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내 얘기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넌 펫이 되는 거니까, 어떤 지시라도 따르도록.” ……어떤 지시라도……. 그럼 역시? “리카.” 어? 이름? “대답은?” “네.” “이쪽으로 와서 책상 위로 올라와.” ……책상, 위? “구두는 안 벗어도 돼. 그대로.” 무슨 말인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책상 위에 올라가라……. 그 말을 그대로 따르면……. “빨리.” 짜증이 난 것 같았다. 어떡하지? 회사의, 그것도 사장실의 집무용 책상 위에 올라가는 거야? 하지만 어떤 명령에든 따르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당황하며 책상 위로 올라가 아이스 프린스를 향해 정좌했다──. 그런데! “사장님!” “펫이잖아? 얌전하게 있어. 아, 아니, 사장이 아니지. 주인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을 텐데?” ……그런. 하지만 그 전에, 부르는 호칭이 어떻다고 하기 이전에, 잠깐만! “안 돼요!” 느닷없이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아아, 역시 ‘펫 계약’이란 남자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었구나! ……아니, 시치미 떼어 보았자 소용없어. 그런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잖아. “앗.” 오늘은 캐미솔을 입지 않고 브래지어 위에 바로 블라우스를 입었기 때문에, 앞섶을 풀자 곧바로 가슴이 드러났다. 혹시나 싶어 예쁜 속옷을 입고 와 다행이었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런 점에 안도할 때가 아닌데. “사장님.” “주인님이라니까.” 브래지어 컵의 레이스에 손가락을 걸어 쭈욱 당겼다. “아, 안 돼!” 투웅 흔들리며 유방과 유두가 튀어나왔다. 말도 안 돼……. 남자 친구도 아닌 남자에게 가슴을 보여주고 있다니……. “펫 계약이란 게 사장님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었나요?” “너도 참 끈질기구나. 이제 그만 호칭을 기억해.” “……주인님.” “참 잘 했어요. 그래서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또 있나?” “……그건.” “파견 회사에 알리겠다는 것은 약점을 파고든 협박 행위였고, 융자를 해주겠다며 몸을 만지는 건 매춘 행위였어. 어느 쪽이든 유죄지.” “………….” “고소하겠어?” “아뇨.” 단박에 대답했다. 눈이 마주치니……, 웃고 있다. 바보, 뭐 하는 거야? 도망칠 수 있는 기회였는데. 하지만……. “히야악.” 아이스 프린스의 손가락이 유두에 닿았다. “부드러워……. 하지만 느껴서 단단해지기 시작했어. 봐, 섰어.” 부, 부끄러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것이 이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전말이었다. [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