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나, 타카하라 리카에겐 꿈이 있었다. 그것은 여동생과 함께 애완동물 용품 숍을 여는 것. 5살 연하로 20살인 여동생은 현재 애견 미용사가 되기 위해 전문학교에서 맹렬하게 공부 중이었다.
원래는 이웃에 살고 있던 2살 연상의 사촌이 동물을 좋아했었고, 우리 자매는 그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 사촌은 현재 수의사가 되어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는 커다란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와 여동생도 한때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능력상 어렵다고 판단했고, 동생은 애견 미용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 가게를 지키겠다는 각오로 경제학부로 대학에 진학하여, 마케팅과 회사 경영에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했고, 지금은 파견 사원으로 일하며 저축을 하고 있는 처지였다.
사실은 졸업하자마자 정사원으로 취직했지만, 1년 만에 그만둬버렸다. 너무 바빠서 건강을 해쳤기 때문이었다. 저축하려고 일하다가 건강을 해친다면 본말전도였다.
부모님과 동거 중인 생활에 기대고 있다는 자각이 들기는 했지만, 수입은 거의 다 저축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모님께는 정말 감사하고 있었다.
그 뒤로 몇 번인가 파견처를 옮겼고, 지금은 안내 데스크의 접수 일을 맡고 있었다.
업무 중 손님이 없는 혼자만의 시간에는 창업 노하우에 관한 책을 읽었다. 큰 회사의 접수원들은 대부분 다양한 업무를 보아야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불가능했으리라.
그러나 이 회사는 커다란 상장사임에도 부서가 몇 개의 빌딩에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본사 기능이 있는 이 빌딩의 안내 데스크에는 두 명밖에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일반용 접수와 중역용 접수가 나뉘어 있었다. 업무를 각각 한 명씩 맡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껏 개인적인 일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뭘 하고 있지?”
들려온 목소리에 당황하며 얼굴을 들었다. 어려운 말이 쓰여 있는 챕터를 열심히 읽고 있느라 사람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 네. 죄송합니──.”
거기까지 말하려다 굳어 버렸다.
눈앞엔 아이스 프린스, 즉 사장! 무서운 얼굴로 위에서 노려보고 있었다.
“어,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대답 없이 손이 슥 올라갔다. 맞는다! 라고 예측해서 반사적으로 눈을 감은 것이 잘못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책상 위에 있던 책을 가져간 후였다.
“아! 그건.”
“업무 중에 딴 짓이라.”
“그건 저어…….”
“손님이 있든 없든 우리 회사는 자네를 일곱 시간 동안 여기에 묶어 놓는 대가로 급료를 지불하고 있어. 업무 중에 사적인 일을 하는 건 월급 도둑이야. 파견 회사에 연락해 이번 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해야겠군.”
“네에?! 잠깐만요. 사적인 일을 했던 건 반성하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유혹에 져서 책을 읽고 말았어요. 정말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파견 회사에는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장래를 위해 돈이 필요합니다. 해고되면 곤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당해도 지불할 수가 없어요. 앞으로 다시는 이러지 않을 테니 제발 용서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아, 어떡하지. 가게를 내기 위해 식사도 제한하고 옷도 싸구려만 사 입으며 가능한 한 저금해 왔는데!
“장래를 위해?”
“그건……, 저어.”
아이스 프린스는 내게서 빼앗은 책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창업을 위한 노하우……. 자네, 창업을 하고 싶은 건가?”
“네. 그러기 위해 열심히 저금하고 있는데……. 부탁드립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을 테니 용서해주세요.”
이제는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나 제안하겠는데, 나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으면 파견 회사에도 말하지 않고 자네에게 융자도 해줄 수 있어. 어때?”
“융자요?! 정말로?”
“그래.”
“어떤 계약이죠? 아, 아니, 융자보다, 정말 파견 회사에는 말씀 안 하실 건가요?”
“그렇게 말했잖아. 계약 기간은 내일부터 일주일. 계약 내용은 자네가 내 펫이 되는 것.”
……펫?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됐다.
“듣고 있어?”
“듣고 있습니다, 만…….”
아이스 프린스와는 대단히 인연이 멀어 보이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지금 펫이라고 했어?
“펫?”
되물어 보았다.
“그래, 펫.”
조용……, 이라는 효과음이라도 넣어야 할 것처럼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대답 따위는 불가능했다.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충격이 컸다.
무슨……, 계약이……, 펫?
아이스 프린스라 불리는 경외의 대상이?
……그런 취미?
늘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마치 등에 블리자드라도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쿨하고 박력 있던 아이스 프린스가 여자를 붙잡고 펫이라니……. 그런 취미가 있는 거야?
“주인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펫이 되는 거야. 융자는……, 그래. 최대 5000만 정도라면 무이자로 빌려주지.”
“5000마아안?!”
“어때?”
……어떠냐니.
“싫으면 됐어. 파견 회사에 이번 일을 얘기해서 접수를 바꿔달라고 하고, 너 혼자 있었던 시간을 산출해서 그 시간만큼의 환불 금액과 그 시간을 조사하는 데 드는 수고비를 손해배상으로 청구하면 되니까.”
케에엑!
“근무 시간에 딴짓을 하는 덜 떨어진 직원을 파견한 것에 대한 배상도 청구해야겠군.”
“할게요! 계약하겠습니다!”
“융자 쪽은?”
“융자 따위는 고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일을 묵인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럼 계약하는 거지?”
“할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눈이 맞았다. 아이스 프린스가 웬일로 미소를 짓고 있네……?
“그럼 계약 성립이군. 이제부터 둘만 있을 땐 ‘주인님’이라고 부르도록.”
“──네?”
뭐, 라고? 주, 주인님?
“여기로 빈 메일을 보내 놔.”
아이스 프린스는 접수 카운터에 비치되어 있는 메모지에 사각사각 무언가를 써서 내게 내밀었다.
“저어.”
“내일부터 퇴근 시간이 되면 사장실로 오도록. 그럼.”
“……하아.”
대단히 기분 좋은 듯이 걸어가는 아이스 프린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것이 어제 오후의 일이었다.
그날 남은 근무 시간은 물론, 집으로 돌아가서도 머릿속이 계속 새하얗기만 했다.
근무 시간에 사적인 일을 하다 들켰다. 그것도 회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에게. 뭐든지 논리적으로 따지려 들고, 말도 붙이기 어려울 만큼 무섭고 차가운 아이스 프린스에게.
파견 회사에 이 일을 알리겠다고 했다.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를 자르고 지불했던 급료의 반환과 조사비 명목의 비용, 배상금까지 청구하겠다니……. 아아, 그것만은──.
직장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등록도 말소될 것이다. 파견 회사가 부담할 비용은 분명히 내게 청구되겠지?
그러면 지금까지 모아 놓았던 돈이 다 없어지게 될 것이었다.
동생과 둘이서 열기로 했던 애견 용품 숍의 꿈이──.
“펫 계약이라니……. 어떤 걸 시키려는 것일까?”
만약을 위해 인터넷으로 알아봤더니, 크게 나눠 세 가지 정보가 나왔다.
우선은 애완동물이 병이 들었을 때를 대비한 애완동물용 보험. 뭐,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임대계약을 했을 경우, 애완동물을 기를 수 없는 주택에서 동물을 기르다 들켰을 때의 트러블 운운.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역시?”
야한 만화나 소설…….
이런 짓 저런 짓을 당하며 오로지 당하는 쪽이 괴로워하는…….
거짓말. 누가 거짓말이라고 해줘!
하지만 저 아이스 프린스가 이런 걸 바라고 있을까? 느낌상 아무리 봐도 목석같잖아? 여자에게 흥미가 없어 보이는데……. 추파를 던지는 미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걸?
그런데……, 펫?
믿을 수 없어.
하지만, 하지만……. 머리를 몇 번이고 흔들어도, 누워도, 똑바로 일어서도 현실이야……. 내일부터 계약을 시행할 경우, 나는 퇴근 시각이 오면 사장실로 가야만 했다.
그리하여 다음 날 오후 5시.
그가 말한 대로 사장실로 향하려 했다.
우우우웅……, 스마트폰의 진동 소리가 났다. 뭘까 싶어 확인해 보니 아이스 프린스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당황하며 확인했더니──.
“급한 회의가 생겼다. 끝나면 연락할 테니 어디 가서 시간을 때우고 있어.”
어? 혹시 펫 계약이란 24시간 대응이 필요한 건가?
진짜로?
고민해봤자 소용없었다. 접수는 야근이 없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여기에 있다가는 주위 사람들의 의심을 살 터였다. 어딘가에서 시간을 때워야……. 하지만 식사는 안 돼. 기다리는 동안이나 한창 먹고 있을 때 메일이 오면 큰일이니까.
지금은 카페에서 가볍게 먹거나, 서점이나 약국에 가서 쇼핑이나 할 수밖에 없겠어. 아니면 어딘가 벤치에서 게임을 하든지…….
아냐, 아냐, 아냐, 그건 안 돼. 침울 모드여서 그만 의식이 도피 쪽으로 가버렸지만, 일의 발단은 바로 그 ‘딴짓’이잖아. 공부를 해야지!
근무 중에 공부를 할 수 없게 돼서 회계 교재는 안 갖고 왔지만, 통근 전철 안에서 읽을 책은 있으니까. 게다가 대형서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방법이고.
그렇게 결정하고는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한 뒤 회사를 나왔다.